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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21 묵상나눔(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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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evin
댓글 0건 조회 4,874회 작성일 21-09-2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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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21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 버전)
성경범위: 사무엘상 19장, 요한복음 4:43-54
오늘의 한 구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4:47)

요한 복음에는 아주 제한된 예수님의 기적들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7가지 기적들을 기적(Miracles)이라 표현하지 않고 표적(Signs)이라 표현한다.
이 의미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과 예수님의 사역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오늘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두번째 표적이야기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사건들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일반적인 교훈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이 사건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고자 하는 의도를 100% 전달받지 못하고있다.
오늘의 이 사건을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시는 예수의 능력”
혹은 “믿음으로 이르는 구원” 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런 교훈적 의미가 잘못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속에서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한 사도 요한의 의도는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건에서의 아버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왕의 신하인 아버지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으신 예수님이시다.
그는 죽어가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그 아버지께 달려가 간구하시는 예수님 이시다.
그리고 “그가 살리라” 하신 선언을 받아내시는 예수님 이시다.
그리고 그 선언의 믿음을 어두운 밤을 지나 확인하실 때까지 지켜내시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이시다.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이 사건의 기록 목적이라면 신학적 오류를 만들어 낼 소지가 있다.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는 오류가 발생한다.
혹은 그 가족이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한 매개체로서가 이 사건의 목적이라면 표적이라 하기는 어울리지않는 사건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라는 것이 기록의 목적이면 예수님은 인간의 목적을 이루어 주시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릴 소지가 있다.
예수께서는 죽어가는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 아버지의 심정으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 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가 살리라” 하신 선언을 받아 내신 신실하신 아버지 이시다.
오후 1시 (유대시간 7시)에 이 선언을 들었지만 가버나움 까지의 먼 거리와 위험으로 인해 바로 길을 떠나지 못하고 어두운 밤을 그 말씀에 의지하며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지세야 했던 아버지처럼 사망의 권세와의 싸움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그 아들의 살아있음을 확인하시는 나의 아버지 이시다.
그 아버지의 간절함이 십자가이다.
그 아버지의 믿음이 바로 십자가의 보혈이다
그 아버지의 믿음의 승리가 바로 부활이고
나의 영생이다.
이런 예수를 만난 것이 은혜이고 감사이다.
그 은혜에 오늘도 또 감사의 삶이되길 기도한다.
감사의 예배가 되는 삶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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