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4 묵상나눔(X2, 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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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4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열왕기하 2장, 사도행전 2:37-47
오늘의 한 구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행2:38)
우리는 곧잘 말씀에 은혜 받았다. 설교에 은혜 받았다 고백한다.
그런데 그 받은 은혜가 무엇일까?
내 생각과 감정에 부합하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소망하고 기대하는 그것에 대한 말씀의 접근이었기 때문은 아닌가?
정말 은혜 받는 것은 오늘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
말씀이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역시 은혜가 되겠지만
나의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확인해 주시는 것 역시 은혜가 되겠지만
참 은혜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체 혹은 알고도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그 모습을 보여주시며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말씀이 참 은혜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베드로의 설교에 그들의 마음이 찔렸다.
이런 찔림의 단계가 있어야만 우리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은혜는 바로 오늘의 말씀이다.
이 번역에는 “죄사함을 받으라” 에 사용된 전치사 “에이스(εἰς)”를 영어의 For 로 번역을 하고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인간이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아서 죄 사함을 얻는 것으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 에이스의 원 의미는 for 가 아닌 in이다.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죄사함 안에서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다.
그리고 이 번역이 신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예수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이루신 죄사함의 은혜 안에서 만이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죄사함의 은혜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탄식하고 두려워하는 죄인들에게 베푸신 은혜인 것이다.
이렇게 말씀이 내게 은혜로 다가오는 것은
마음의 찔림이 우선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죄를 깨닳는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은혜가 내게 임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날마다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날마다 말씀이 날 선 검이 되어
심령과 골수를 찌르는 은혜를 기도한다.
내 생각과 같음으로 인한 은혜가 아닌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인한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죄 사함 안에서 회개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바이블타임 묵상 (한영대조, X2버전)
성경범위: 열왕기하 2장, 사도행전 2:37-47
오늘의 한 구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행2:38)
우리는 곧잘 말씀에 은혜 받았다. 설교에 은혜 받았다 고백한다.
그런데 그 받은 은혜가 무엇일까?
내 생각과 감정에 부합하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소망하고 기대하는 그것에 대한 말씀의 접근이었기 때문은 아닌가?
정말 은혜 받는 것은 오늘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를 깨닫는 것이 그 시작이 아닐까?
말씀이 나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것 역시 은혜가 되겠지만
나의 생각과 판단이 맞다고 확인해 주시는 것 역시 은혜가 되겠지만
참 은혜는 내가 인식하지 못한체 혹은 알고도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진 그 모습을 보여주시며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말씀이 참 은혜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베드로의 설교에 그들의 마음이 찔렸다.
이런 찔림의 단계가 있어야만 우리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은혜는 바로 오늘의 말씀이다.
이 번역에는 “죄사함을 받으라” 에 사용된 전치사 “에이스(εἰς)”를 영어의 For 로 번역을 하고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인간이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아서 죄 사함을 얻는 것으로 인식이 된다.
하지만 이 에이스의 원 의미는 for 가 아닌 in이다.
원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죄사함 안에서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이다.
그리고 이 번역이 신학적으로도 타당하다.
예수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이루신 죄사함의 은혜 안에서 만이
인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죄사함의 은혜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탄식하고 두려워하는 죄인들에게 베푸신 은혜인 것이다.
이렇게 말씀이 내게 은혜로 다가오는 것은
마음의 찔림이 우선한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죄를 깨닳는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은혜가 내게 임한 은혜가 되는 것이다.
날마다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날마다 말씀이 날 선 검이 되어
심령과 골수를 찌르는 은혜를 기도한다.
내 생각과 같음으로 인한 은혜가 아닌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인한 은혜가 넘치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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