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15 묵상나눔(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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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범위: 레위기 17-18장, 마가복음 4:30-41
오늘의 한 구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40)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비유로 가르치신 후에 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하셨다.
한글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를 모시고 갔다 라고 번역했지만 원어 성경은 “데리고 갔다” 라고 기록했다. 영어 성경 역시 “They took him with them”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의 번역 역시 “어찌” 가 아닌 “아직도”로 번역해야 올바른 번역이다. 영어 번역은 “Have you still no faith?” 이다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어부로 살던 그들은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아닌 예수의 보호자가 된 듯 예수를 데리고 항해를 한다. 바다에서는 그들이 선생이었다.
이것은 예수가 누워 주무신 장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수를 그들은 배의 고물 즉, 배의 맨 뒤 구석에 방치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배를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감당할 한계를 넘어선,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광풍과 파도가 두렵게 밀려오자 그때서야 맨 뒤 구석 자리에 팽개쳐 둔 예수님이 보였다.
그리고는 그 환란 가운데서 태연히 주무시는 예수를 보고 화가 솟구쳤다.
그들은 예수를 깨우며 짜증스럽게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보고 잠이 오십니까? 이 상황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소리친다.
이미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예수와 함께 하면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에게 가르치신 메시아와 함께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 의지했다.
이 배는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광풍과 파도는 세상의 풍조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장이 되어 나아가야 하는 배를 예수는 뒷방에 팽개치고 알량한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운행해 나가려 하니 세상의 풍조와 유혹과 권력 앞에 난파 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레위기 말씀 역시 동일한 주제의 말씀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풍조와 가나안 거주민들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순종하라는 말씀을 주시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와 나의 삶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는가?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와 나의 삶 가운데 예수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신 예수의 질책은 단순히 광풍과 파도의 두려움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어찌하여 아직도 나를 메시야로 믿지 못하고 있느냐? 라는 질책이신 것이다.
아직도 나의 삶에 예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삶을 예수가 이끌고 가는 것인지?
우리의 공동체는? 우리의 교회는?
예수가 팽개쳐진 공동체와 교회와 삶은 세상 풍조와 유혹과 권력 앞에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예수와 함께 하면 그 권능으로 평안과 승리를 얻는다.
그는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두려운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의 질책은 메아리 치고 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오늘의 한 구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4:40)
예수께서 바닷가에서 비유로 가르치신 후에 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하셨다.
한글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를 모시고 갔다 라고 번역했지만 원어 성경은 “데리고 갔다” 라고 기록했다. 영어 성경 역시 “They took him with them”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또한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의 번역 역시 “어찌” 가 아닌 “아직도”로 번역해야 올바른 번역이다. 영어 번역은 “Have you still no faith?” 이다
어려서부터 바다에서 어부로 살던 그들은 이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아닌 예수의 보호자가 된 듯 예수를 데리고 항해를 한다. 바다에서는 그들이 선생이었다.
이것은 예수가 누워 주무신 장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예수를 그들은 배의 고물 즉, 배의 맨 뒤 구석에 방치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배를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감당할 한계를 넘어선,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광풍과 파도가 두렵게 밀려오자 그때서야 맨 뒤 구석 자리에 팽개쳐 둔 예수님이 보였다.
그리고는 그 환란 가운데서 태연히 주무시는 예수를 보고 화가 솟구쳤다.
그들은 예수를 깨우며 짜증스럽게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보고 잠이 오십니까? 이 상황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소리친다.
이미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예수와 함께 하면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자신들에게 가르치신 메시아와 함께 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만 의지했다.
이 배는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광풍과 파도는 세상의 풍조를 의미한다.
예수가 선장이 되어 나아가야 하는 배를 예수는 뒷방에 팽개치고 알량한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운행해 나가려 하니 세상의 풍조와 유혹과 권력 앞에 난파 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레위기 말씀 역시 동일한 주제의 말씀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애굽에서의 풍조와 가나안 거주민들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만을 순종하라는 말씀을 주시고 있다.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와 나의 삶의 운전대는 누가 잡고 있는가?
우리의 공동체와 교회와 나의 삶 가운데 예수의 자리는 어디인가?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신 예수의 질책은 단순히 광풍과 파도의 두려움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어찌하여 아직도 나를 메시야로 믿지 못하고 있느냐? 라는 질책이신 것이다.
아직도 나의 삶에 예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삶을 예수가 이끌고 가는 것인지?
우리의 공동체는? 우리의 교회는?
예수가 팽개쳐진 공동체와 교회와 삶은 세상 풍조와 유혹과 권력 앞에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예수와 함께 하면 그 권능으로 평안과 승리를 얻는다.
그는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두려운 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예수의 질책은 메아리 치고 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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