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7 묵상나눔(X2,한영대조)
페이지 정보

본문
오늘의 한 구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2:17)
레위(마태)는 그동안 갈릴리 인근에서 큰 기적과 병고침과 대단한 가르침을 주고 있던 예수라는 한 청년에 대해 많이 듣고 있었고, 내심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바닷가에 앉아 고기 잡는 어부들의 소득세를 받고 있던 때에 그 예수가 그 앞을 지나 가시면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신다.
레위도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이 그를 어찌 하다보니 세관일을 보게 만들었고, 어느덧 자리에 앉아 지시를 하고 관리를 하는 위치에까지 만들었다.
날마다 죄인 소리를 들으며, 이웃과 형제들에게 욕 먹어가며 그 일을 하다보니
이제 그도 다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남은 삶의 목표는 그저 돈 버는 것만 남아버린 인생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도 늘 하나님의 품이 그리웠고, 회당에 가서 예배하고 싶었고, 자기 민족의 형제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런 목마름 가운데 예수의 부르심은 가뭄 가운데의 단비였다.
그는 곧장 자기의 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영역이 이제 회복됨에 너무 기뻐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부르고 예수를 모시고 함께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불행이도 그 자리에 함께 해 주기를 초청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와 같은 민족의 저주를 안고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다른 유대인들이 죄인이라 부르고 세리라 부르며 저주하던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들과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시고 말씀을 나누셨다.
그 자리에 함께한 죄인들이 예수를 따랐다 기록한다.
아마도 마태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누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늘 상처로 가득했고, 미안함으로 가득했고,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또 그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그들!
지금의 누림을 던져 버릴 용기와 결단의 모티브를 만나지 못했던 그들!
예수는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으시고, 참 가치를 심어 주고 계신다.
나는 이 세리와 죄인중의 하나가 아닐까?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던져버릴 용기도, 결단도 하지 못하고
상처만 주고 또 받으며 병약해 가는…….
아니면 나만 의로운 척 모두에게 상처를 주며 자기 의에 도취되어 사는 교만의 병에 빠진 바리세인과 서기관인가?
어찌되었던 나는 치료가 필요한 병자임을 고백한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순간 예수는 내게 찾아오신다.
오늘의 말씀의 상황중의 죄인이라 불리던 자들보다 더 급히 예수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은
바로 의롭다 자만하고 교만하는 중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다.
주여 내가 병들어 있음을 깨우쳐 주옵소서.
내가 병들었음을 깨닳게 하시고 예수의 치료하심을 입게 하소서.
이를 위해 오신 예수여…………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2:17)
레위(마태)는 그동안 갈릴리 인근에서 큰 기적과 병고침과 대단한 가르침을 주고 있던 예수라는 한 청년에 대해 많이 듣고 있었고, 내심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바닷가에 앉아 고기 잡는 어부들의 소득세를 받고 있던 때에 그 예수가 그 앞을 지나 가시면서 그에게 “나를 따르라” 하신다.
레위도 역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이 그를 어찌 하다보니 세관일을 보게 만들었고, 어느덧 자리에 앉아 지시를 하고 관리를 하는 위치에까지 만들었다.
날마다 죄인 소리를 들으며, 이웃과 형제들에게 욕 먹어가며 그 일을 하다보니
이제 그도 다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남은 삶의 목표는 그저 돈 버는 것만 남아버린 인생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도 늘 하나님의 품이 그리웠고, 회당에 가서 예배하고 싶었고, 자기 민족의 형제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고 싶었다.
그런 목마름 가운데 예수의 부르심은 가뭄 가운데의 단비였다.
그는 곧장 자기의 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른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영역이 이제 회복됨에 너무 기뻐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부르고 예수를 모시고 함께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불행이도 그 자리에 함께 해 주기를 초청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와 같은 민족의 저주를 안고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에 연연하지 않으셨다.
다른 유대인들이 죄인이라 부르고 세리라 부르며 저주하던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며 그들과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시고 말씀을 나누셨다.
그 자리에 함께한 죄인들이 예수를 따랐다 기록한다.
아마도 마태와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누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늘 상처로 가득했고, 미안함으로 가득했고,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또 그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그들!
지금의 누림을 던져 버릴 용기와 결단의 모티브를 만나지 못했던 그들!
예수는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의 상처를 보듬으시고, 참 가치를 심어 주고 계신다.
나는 이 세리와 죄인중의 하나가 아닐까?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던져버릴 용기도, 결단도 하지 못하고
상처만 주고 또 받으며 병약해 가는…….
아니면 나만 의로운 척 모두에게 상처를 주며 자기 의에 도취되어 사는 교만의 병에 빠진 바리세인과 서기관인가?
어찌되었던 나는 치료가 필요한 병자임을 고백한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순간 예수는 내게 찾아오신다.
오늘의 말씀의 상황중의 죄인이라 불리던 자들보다 더 급히 예수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은
바로 의롭다 자만하고 교만하는 중병을 앓고 있는 자들이다.
주여 내가 병들어 있음을 깨우쳐 주옵소서.
내가 병들었음을 깨닳게 하시고 예수의 치료하심을 입게 하소서.
이를 위해 오신 예수여…………
- 이전글2021. 4. 8 묵상나눔(X2,한영대조) 21.04.08
- 다음글2021. 4. 6 묵상나눔(x2,한영대조) 21.04.0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