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6 묵상나눔 (X2,한영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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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범위: 출애굽기 38장, 마태복음 26:57-75
오늘의 한 구절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출38:8)
하나님의 세세한 명령에 따라 성전의 물품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울타리를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하도 이제 그 전체 물품들을 만드는데 소요된 금과 은과 동의 소요량을 보고하고 있다.
그중 물두멍을 만드는 재료가 아주 특별하다.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이 자신의 청동 손거울을 드려 그것으로 만들었다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크기를 정해 주시지 않은 물품이 바로 물두멍이다.
아마도 물두멍을 위해 자신들의 손거울을 드릴 당신의 여종들의 헌신만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시며 그 크기를 정하지 않으신 것 같다.
여기서 “수종”으로 번역된 “차바”는 군대 용어로 공격하다, 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종 든다는 의미로는 “아바드” 나 “쉐라트”를 주로 사용한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일반 허드레일을 하던 여인들이 아닌 영적 전사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찌되었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여인들에게 아름다움의 추구보다 큰 가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육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치장할 때 꼭 필요한 거울을 거룩의 유지를 위한 물두멍 제작에 아낌없이 봉헌하였다.
그 광야에서 이제 그녀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치장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정결의 자리를 만드는 영적 전사다운 일을 감당한 것이다.
반면 오늘의 마태복음 말씀에는 예수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하던 베드로가 예수의 예언대로 닭 울기 전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우연 치고는 너무나 강력하게 두 사건의 대조가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다.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그리고 당시 문화로 사람으로 계수 되지도 않던 이 영적 전사들인 여인들이 이루어 낸 성경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귀한 헌신과
신약 교회의 주추돌이 될 것이라 축복받던 베드로의 영원히 이어질 수치스러운 사건의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교훈 해 주신다.
물론 이 사건 이후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큰 일을 감당한다.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겉보기에 위태해 보이고 타락해 가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 감추어진 여인들의 소리 없는 헌신과 겸손과 기도가
흔들리는 교회를 든든히 하고 확장하고 또 바로 세우도록
죄를 자복하고, 거룩을 유지하도록 늘 우리 앞에 있는
물두멍의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베드로와 같이 눈에 보이는 큰 일을 이루는 것은 분명 큰 은혜이다.
그러나 이 여 전사들의 감추인 사역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은혜요 축복임을 배운다.
어찌보면 이 여인들의 주님 향한 사랑이 더 큰 사랑일 수도……
주님께 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으리라
오늘의 한 구절
“그가 놋으로 물두멍을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하였으니 곧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더라” (출38:8)
하나님의 세세한 명령에 따라 성전의 물품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있다.
오늘의 말씀은 번제단과 물두멍과 성막 울타리를 제작하는 과정을 기록하도 이제 그 전체 물품들을 만드는데 소요된 금과 은과 동의 소요량을 보고하고 있다.
그중 물두멍을 만드는 재료가 아주 특별하다.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이 자신의 청동 손거울을 드려 그것으로 만들었다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크기를 정해 주시지 않은 물품이 바로 물두멍이다.
아마도 물두멍을 위해 자신들의 손거울을 드릴 당신의 여종들의 헌신만으로 만들어지기를 기대하시며 그 크기를 정하지 않으신 것 같다.
여기서 “수종”으로 번역된 “차바”는 군대 용어로 공격하다, 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종 든다는 의미로는 “아바드” 나 “쉐라트”를 주로 사용한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일반 허드레일을 하던 여인들이 아닌 영적 전사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어찌되었던,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여인들에게 아름다움의 추구보다 큰 가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육신의 아름다움을 위해 치장할 때 꼭 필요한 거울을 거룩의 유지를 위한 물두멍 제작에 아낌없이 봉헌하였다.
그 광야에서 이제 그녀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치장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그 대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정결의 자리를 만드는 영적 전사다운 일을 감당한 것이다.
반면 오늘의 마태복음 말씀에는 예수를 절대 배반하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하던 베드로가 예수의 예언대로 닭 울기 전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우연 치고는 너무나 강력하게 두 사건의 대조가 오늘의 말씀에 나타난다.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그리고 당시 문화로 사람으로 계수 되지도 않던 이 영적 전사들인 여인들이 이루어 낸 성경이 존재하는 한 이어질 귀한 헌신과
신약 교회의 주추돌이 될 것이라 축복받던 베드로의 영원히 이어질 수치스러운 사건의 대조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교훈 해 주신다.
물론 이 사건 이후에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큰 일을 감당한다.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겉보기에 위태해 보이고 타락해 가는 것 같지만
하지만 이 감추어진 여인들의 소리 없는 헌신과 겸손과 기도가
흔들리는 교회를 든든히 하고 확장하고 또 바로 세우도록
죄를 자복하고, 거룩을 유지하도록 늘 우리 앞에 있는
물두멍의 역할을 감당해 오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베드로와 같이 눈에 보이는 큰 일을 이루는 것은 분명 큰 은혜이다.
그러나 이 여 전사들의 감추인 사역 역시 그에 못지않은 은혜요 축복임을 배운다.
어찌보면 이 여인들의 주님 향한 사랑이 더 큰 사랑일 수도……
주님께 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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